코로나19 펜데믹으로 반사 이익을 누렸던 마켓컬리의 기업공개(IPO) 추진이 '엔데믹(풍토병화) 대전환'으로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여기에 국내외 금리 인상 기조로 증시마저 불안해지며 IPO 시장의 흥행이 얼어붙을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신선식품 새벽 배송 e커머스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컬리는 지난 3월 한국거래소에 유가증권시장(KOSPI)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했습니다. 컬리는 빠르면 오는 7월 상장한다는 목표지만, 녹록지 않은 대내외 변수가 잇따르는 상황입니다.
그동안 컬리는 '코로나19 수혜주'로 비대면 수요 폭발에 힘입어 사세를 키워왔습니다. 하지만 변함없는 '만성 적자'는 상장 추진에 치명적 약점으로 꼽힙니다.
'테슬라 요건'(이익 미실현 특례상장)으로 국내 e커머스 1호 상장을 노리는 컬리는 연결기준 영업손실이 2020년 1163억원에서 지난해 2177억원으로 큰 폭 늘었습니다.
e커머스 업체들의 '치킨게임'이 격화되는 가운데 인프라 확충에 따른 '계획된 적자'라는 게 컬리의 입장이지만 근본적인 수익성을 우려하는 시선도 제기됩니다.
시리즈F까지 투자를 연이어 유치하는 사이 김슬아 컬리 대표의 지분율은 5.75%까지(지난해 말 기준) 감소했습니다. 컬리 지분의 과반은 중국·러시아·미국 등 외국계 벤처캐피탈(VC)들이 보유 중이며, 김 대표는 6대 주주에 그칩니다. 상장 이후 해외 자본이 투자금을 대규모로 회수할 수 있다는 '엑시트 리스크' 우려도 나옵니다.
이에 따라 컬리가 과연 수익성과 경영권 확보 방안을 얼마나 합당하게 제시하느냐가 상장 심사 통과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반해 연내 코스닥 상장을 계획 중인 또 다른 새벽배송 업체인 오아시스마켓은 매출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내실 있는 경영으로 10년 연속 흑자를 내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오아시스마켓의 최대 주주는 국내 상장기업인 지어소프트다.
엔데믹 전환도 컬리에게는 악재 요인으로 꼽힙니다. 컬리는 2015년 사업 초기에는 '강남'에서 입소문이 난 식품 배송 앱으로 통했습니다. 이후 코로나19 펜데믹에 큰 폭 성장하며 배송 영역을 넓혔습니다.
컬리는 특히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대규모 인프라 투자에 공들여왔지만, 앞으로 엔데믹으로 일상 회복이 되며 고객들이 다시 오프라인 매장으로 발길을 돌릴 경우 새벽배송 시장 자체가 성장이 주춤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신선식품은 고객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사려는 경향이 높은 품목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집밥' 대신 외식으로 수요가 몰리고 있는 것도 컬리 입장에선 불리한 요인입니다.
컬리는 앞으로 비(非)식품 포트폴리오를 늘린다는 복안이지만, 이 경우 또 다른 초대형 e커머스와 경쟁해야 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한 쿠팡 주가의 '추락'도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공모가가 주당 35달러였던 쿠팡은 지난해 3월 11일 상장 첫날 장중 69달러로 최고가를 찍었지만, 이후 줄곧 하락세를 이어오다 급기야 지난 6일(현지시간)에는 장중 11.59달러 까지 떨어지며 공모가에서 3분의 1 토막이 났습니다.
쿠팡은 증권가에서 '공격적인 투자로 시장을 선도했지만, 언제 흑자로 돌아설 지 의문이 든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때문에 쿠팡의 전례가 투자자들에게 깊이 인식된 상황에서 컬리는 상장이 이뤄진다고 해도 주가 상승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이른바 '빅스텝'으로 불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잇단 기준금리 인상도 악재 요인입니다. 업계에선 "e커머스 업체들이 만에 하나 상장에 성공하더라도 안정적인 주가를 유지하려면 지속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며 "그러나 이런 입증이 고금리 시대에는 더 어려울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최근 글로벌 거시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투자 심리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국내 IPO 대어들이 잇따라 상장 철회에 나서고 있습니다. 사이버 보안 업계 대장주로 꼽혔던 SK쉴더스도 지난 6일 상장 철회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올 들어 ▲현대엔지니어링 ▲보로노이 ▲대명에너지에 이은 4번째 상장 철회다.
컬리 뿐 아니라 당초 연내(SSG닷컴·오이사스마켓) 또는 내년(11번가) 쯤 IPO를 노려온 다른 e커머스 기업들도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일부는 적정 수준의 기업 가치를 평가 받을 수 없다면 '신중 모드'로 돌아설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옵니다.
김종훈 컬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3월 말 상장 예비심사를 신청하며 "시장 상황을 종합 검토해 최적의 시점에 상장을 진행할 것"이라며 "주주와 주관사, 거래소와 긴밀히 협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